경쟁과 대립을 넘어서고

- 켄과 베티의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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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혜

벨빌리지 동네 투어를 마친 1월 20일 저녁, 우리는 케런(이재영 원장님 부인) 부모님께서 준비하신 저녁식사를 맛있게 하고, 우리를 맞으러 나온 호스트가족을 만났다. 2박 3일이지만 마치 입양을 기다리는 어린아이처럼 긴장과 설레임이 교차했다.

나와 신수경샘을 맞아주신 분은 벨빌리지 마을과 기념관을 안내해 주셨던 학구적인 70대 할머니 베티였다. 반갑게 인사한 후 차에 오르자 어떤 집일까 또 다른 기대와 궁금함이 생겼다. 베티가 운전하는 자동차가 6-7분 동안 넓은 들판을 가로지른 후 숲속 길로 접어드는 순간 나는 많이 놀랐다. 전원 주택지를 찾고 있던 10여 년 전 이런 숲과 굽이굽이 숲길을 통과해서 가는 집을 꿈꿨는데 지난날의 꿈이 눈앞에 현실로 펼쳐진 것이다. 그 사이 자동차 불빛에 토끼가 튀어 나왔다 금방 숲으로 사라졌다.

웃음이 나왔다. 하나님께서 내 속마음을 감찰하시고 짧은 시간이지만 소원을 이루어주신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늘아버지의 사랑이 느껴져서 가슴이 찡했다. 숲길은 눈이 녹지 않은 채 얼어 있어서 차가 지날 때마다 바지직 눈얼음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그렇게 베티의 집에 도착했을 때 주차장 벽에 온갖 공구와 연장들이 가지런히 정돈된 모습이 들어왔다. 70대로 보이는 베티의 남편 캔이 우리를 반가이 맞아 주었다. 우리는 가끔 파파고를 이용해서 담소를 나누고 안내해 준 아래층 방(반지하)에 여장을 풀었다. 넓은 공간에 여러 개의 기타와 악기가 걸려 있었고 당구대도 있었다.

내 방에서는 곰팡이 냄새로 인해 은근슬쩍 신경이 쓰여서 마스크를 하고 잠이 들었다. 다음날은 아침 식사를 마치고 베티, 캔과 함께 메노나이트 교회에서 예배를 드렸다. 건물을 크고 좋았지만 예배드리는 숫자는 그리 많지 않았다. 우리들의 시골교회를 보는 느낌이었다.

집에 돌아와 점심 식사 후 세가정과 합류하여 케런 부모님댁과 캐런 외할머니가 계시는 요양원과 근처 요양병원을 둘러보았다. 일행들과 집에 돌아왔더니 캔과 베티가 저녁을 준비해 놓고 계셨다. 내심 10명이 넘는 사람들의 저녁식사를 어떻게 준비할 지 걱정했는데 다행히 간단히 준비하셨다.

차와 수프, 빵, 소세지, 베이컨 정도 그리고 후식으로 후르츠칵테일이 있었다. 손님을 초대하여 식사대접을 하는 것 또한 형편에 따라 간단하게 할 수 있구나 생각하니 주부인 나에게는 이점도 은혜가 되었다. 식사를 마치고 우리는 캔 할아버지 기타 반주에 맞춰 함께 노래하는 시간을 가졌다.

우리나라 애국가와 어메이징그레이스, 메기의 추억 등 모두가 아는 곡으로 불렀다. 노래하는 시간 우리는 나라, 인종, 나이를 뛰어넘어 모두 하나임을 느끼고 연결되는 풍성한 시간이었다. 이어서 세 팀으로 나누어 아마쉬들이 즐긴다는 카드게임과 류미큐브를 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졌다. 76세나 된 캔 할아버지와 그 집을 찾은 어른들 열두 명이 한 사람도 빠지지 않고 모두 게임에 몰입하면서 즐거운 시간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 참 신기했다.

홈스테이를 통해 깨달은 점이 있다. 결코 젊지 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기꺼이 누군가를 초대해서 잠자리와 식사를 대접하고, 그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물어 보고 그들의 필요에 맞춰 일정을 계획하는 것, 여러 사람들을 집으로 초대하여 형편에 맞게 식사대접을 하는 것, 게임이나 노래도 상대에게 맞춰 주는 것, 식사 때 부부가 돌아가면서 기도하는 모습, 부부가 함께 식사를 준비하고, 손님과 함께 하는 시간만큼은 핸드폰도 멀리 두고 온전히 손님에게 집중해주는 모습은 나도 본받고 싶었다.

또 한 가지 감명 받은 것은 그분들의 역사의식이었다. 두 분의 삶이 집약된 앨범(둘째딸이 만들어 줌)이 그것을 뒷받침해 주었다. 특별히 아빠와 엄마의 탄생과 어린 시절 이야기, 두 분의 만남, 결혼하고 가정을 꾸리는 과정, 자녀들 모습 등 구체적으로 잘 기록된 앨범을 보면서 메노나이트 역사관에서 받았던 감명이 되살아났다.

공동체는 물론이고 가정에서도 역사를 중시하고 기록물에 신경을 많이 쓰는 이 분들은 급하지 않고 차분하게 뜨개질을 하고 앨범을 정리하고 퀼트 바느질을 하면서 놀라운 저력을 만들어내고 있었다. 또 교회방문을 통해서는 주일 예배 전에 그룹별 모임으로 삶을 나누고 예배를 드리는 어른들을 위한 교회학교가 눈에 들어왔다. 또 예배 시작 전 손님들을 소개하고 인사를 하는 모습이 예배 후에 하는 우리교회하고 달랐는데 궁금증도 가시게 하고 좋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보았다.

우리나라나 미국의 공통된 점은 나이가 들면 모두 외롭다는 것이다. 신수경샘 아이들이 켄과 베티에게 동영상을 통해 인사하고 화상통화로 재롱을 부리는 모습을 보면서 이분들이 매우 기뻐했다. 정성이 담긴 선물을 받고는 온 가족 놀러오라는 말씀으로 고마움을 표현했고 신수경샘이 베티의 얼굴에 팩을 해 드리고 나는 캔의 허리와 다리에 침을 놓아드리면서 서로가 가지고 있는 것으로 서로를 돌보며 연결되는 시간을 가지기도 했다.

2일 아침, 벨리빌 커피숍에서 또 다시 캐런 부모님이 대접해 주신 아침식사를 맛있게 먹고 다음 여정을 향해 헤어질 때 캔 할아버지가 아미쉬 마차를 직접 찍어 만든, 베티의 손 떨림 증세가 오히려 예술체로 다가오는 엽서를 받아 들고, 이 분들의 따뜻한 배웅을 받고 보니 이 땅의 작은 천국에서 작은 신들을 만나고 왔음이 분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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