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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트라우마의 이해와 치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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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선미

2018년 1월 17일 수요일 EMU에서 첫 번째 날은 하워드 제어 교수님의 강의를 들었고 두 번째 날은 ‘트라우마 이해와 치유’ 워크숍에 참여했다. 워크숍은 현재 STAR프로그램 소장이신 케이티 맨스필드 교수님께서 진행하셨다.

STAR프로그램의 STAR는 Strategies of Trauma Awareness and Resilience의 약자로 ‘트라우마의 이해와 회복탄력성’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STAR프로그램은 심각한 분쟁이나 전쟁, 재난, 사고 등의 어려움 이후에 개인, 조직, 공동체가 겪을 수밖에 없는 외상후스트레스(트라우마)를 이겨낼 수 있는 힘을 길러내기 위한 훈련이라고 한다.

트라우마가 가져올 수 있는 영향을 명확히 이해하고 저항력과 탄력성을 높여 트라우마로 인해 나타날 수 있는 폭력의 악순환을 막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주요 핵심이라고 한다.

미국이 9.11 사태를 겪으면서 기독교세계봉사회(Church World Service)와 함께 CJP에서 집중적으로 발전시킨 영역으로 지금은 미국뿐만 아니라 60여 개국에서 수천 명의 사람들이 훈련을 받아왔다고 한다.

이중에는 가정폭력관련 종사자, 전쟁에 참가한 미군, 내전 중인 지역의 정부군과 반군 대상도 포함되어 있다고 한다.

워크숍을 진행하기에 앞서 케이티 교수님께서는 먼저 자기소개를 하셨는데 9.11테러 이후 트라우마를 겪었고 STAR프로그램과 인연을 맺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워크숍에는 또 다른 참가자가 있었는데 현재 EMU에서 공부하고 있는 김한나 선생님이셨다.

김한나 선생님은 한국에서 교사로 재직하다가 휴직을 하고 EMU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김한나 선생님은 자신이 STAR프로그램에 참여했을 때 심한 호흡 곤란과 경련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중에 이런 증상이 나타나서 힘들 수도 있다고 했다.

그러나 이런 말을 듣는 중에도 나는 설마 내가 그 경험자가 되리란 생각을 전혀 하지 못했다. 그저 예외적인 상황을 위한 일반적인 주의사항일 뿐이라고 생각했다.

케이티 교수님과 김한나 선생님의 이야기를 들은 후 체크인을 하는 서클을 시작하였다. 자신의 지금 상태를 0~10까지 숫자로 나타내어 보라는 것이다. 내 앞에는 4명이 있었고 간단하게 자신을 소개하고 자신의 상태를 숫자로 말하였다.

나도 마음속으로 나의 상태를 점검하고 있었다. 나는 워크숍과 여행에 대한 기대감이 있었지만 시차적응이 안 된 상태라서 나의 상태를 ‘5’라고 말했다.

그런데 사실 나를 사로잡고 있는 것은 다른 것이었다. 케이티 교수님의 이야기가 끝난 후로도 나는 계속 케이티 교수님께서 자신은 계획적인 사람이었는데 트라우마를 겪으면서 전혀 그렇지 못했다고 했던 말에 사로잡혀 있었다.

그리고 나도 내가 나 같지 않았고 내 자신을 전혀 제어할 수 없었던 그 시절들을 떠올리게 되었다. 그 고통스러웠던 시간과 기억들이 점점 나를 사로잡았다. 마치 두 개의 영화를 보고 있는 것처럼 나의 몸은 서클에 참여하고 있는데 내 안에는 다른 영상이 다른 세계가 펼쳐지고 있었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의 상태를 무엇이라고 표현하는지 집중해서 듣고 있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꿈인 듯 아련하다.

모든 참가자들이 자신의 상태를 숫자로 표현하였고 누군간 3이라고 말한 사람이 있었던 것 같다. 교수님께서는 5이하인 사람은 일어서보라고 하셨고 나도 일어섰다. 그리고 그 이유를 말해보라고 했다.

그 때 나의 상태는 이전에 ‘5’라고 말했을 때와는 많이 달라져 있었다. 나는 과거의 고통스러운 기억이 떠올라서 힘들다고 말했고 그 순간 심장이 크게 두근거리고 있는 것을 느꼈다. 이제는 다 지나갔고 극복했다고 생각했는데 과거에 오랫동안 마음 아팠던 그 고통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말을 한 순간부터 심장은 더 두근거렸고 한기가 느껴졌고 미세하게 떨리기도 했다.

그때부터는 제정신이 아니었던 것 같다. 케이티 교수님께서는 참가자들이 모두 일어서서 원을 만들도록 했다. 서로 손을 잡게 했고 어깨에 손을 올리기도 하고 손뼉을 치기도 하고 여러 가지 동작을 했고 마지막에는 안아주시기도 했다. 정말 정신없이 그 시간이 지나갔다.

케이티 교수님과 동료들이 나를 염려하고 격려하는 마음을 느낄 수 있었다. 이 때 비로소 내가 안전한 공간에 있다는 것을 실감했던 것 같다. 그 온기와 따스함이 전해져서 감사했다. 나의 상태는 더 악화되지 않고 차츰 안정되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올 때까지는 꽤 긴 시간이 걸렸다. 그리고 그 시간 동안은 무엇을 들었는지 무엇을 했는지 정말 아련하다.

이후 트라우마 상황에서 피해자와 가해자가 겪게 되는 것과 그것이 어떻게 순환 되는지에 대해서 배웠고, 트라우마 상황에서는 우리 몸의 반응 등에 대해서 배웠다.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경험한 나로서는 이런 설명들이 너무나 잘 이해가 되었다.

그리고 트라우마가 단지 정신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우리 신체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에 대해서도 이해가 되었다. 자율신경의 균형이 깨지면서 나타나는 여러 가지 증상과 미주신경성실신이라는 셧다운 증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나에게 일어났던 일들을 이렇게 설명해 주는 것을 통해 안정감을 느꼈다. 내 안에 일어난 일들을 처음에는 내가 이해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고 그리고 나중에는 설명할 수 없어서 고통스러웠다. 외상후스트레스를 겪고 있는 사람이 이런 설명들을 듣는다면 자신의 상태를 이해할 수 있고, 주변 사람들 또한 그를 이해하고 돕는데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 같다.

케이티 교수님께서는 중간 중간 신체활동을 하게 하셨고 질문을 통해 우리가 배움을 얻도록 하셨다. 이 과정을 통해 나는 신체활동이 트라우마를 극복하는데 큰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강의 마지막에는 한 영상을 보여주시고 질문을 하고 그룹으로 나눠보도록 했다.

아프리카 출신의 작가가 자신이 어떻게 작가가 되었는지에 대해서 이야기 하고 어떤 작품을 쓰고 싶은지에 대해 이야기하는 영상이었다. 그녀는 아프리카에서 태어났지만 영어를 사용했고 유복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그런데 미국에 왔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녀가 영어를 사용한다는 데 놀랐다고 한다. 그녀는 아프리카에 대해 이야기가 너무 단편적이어서 그런 이미지가 만들어졌다고 생각했다.

그녀가 어렸을 때 그녀의 집에서 일하던 아이의 가족들에 대해 어머니로부터 들은 말은 가난하다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녀는 그 아이의 가족들을 만나고 깜짝 놀랐다고 한다. 만약 자신의 어머니가 그 아이의 가족들에 대해 부지런하다고 이야기했다면 달랐을 것이라고 했다.

그래서 그녀는 아프리카에 대해 더 다양한 이야기들을 쓰고 싶다고 했다. 이 동영상은 나에게 큰 울림을 주었다. 우리가 얼마나 많은 편견을 가지고 있는지 그리고 그 편견이 무엇으로부터 비롯되었는지 생각해 보게 했다. 우리 주변에서 이런 단편적인 이야기들이 만들어내는 문제들은 무엇이 있는지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짧은 시간이었지만 STAR프로그램이 어떤 것인지 경험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제 체크아웃 서클로 프로그램을 마무리할 시간이 되었다. 모든 참가자가 둘러앉아 소감을 말했다. 강마리 선생님은 자신의 트라우마에 대해 알아가고 있는 것 같다고 했고, 신수경 선생님도 자신도 몰랐던 트라우마가 떠올랐다고 했다.

김순자 교수님께서는 자신이 극복한 트라우마에 대해 말씀하셨다. 자신은 어렸을 때 아버지가 돌아가셨는데 친구가 아버지가 일본에서 사다준 오르골을 자랑했을 때 너무나 부러웠다고 한다. 그래서 해외여행을 가면 늘 오르골을 사서 자신에게 선물했다고 한다.

그런데 이런 자신의 이야기를 듣고 가족들이 해외여행에서 모두 오르골을 하나씩 사들고 나타났다고 하셨다. 나는 이 이야기를 들으면서 마음이 찡해졌고 늘 사랑받고 부족함 없는 어린 시절을 보냈을 것만 같은 교수님의 이미지가 벗겨지고 새롭게 보였다.

그런데 그때 한쪽에서 큰 웃음이 터져 나왔다. 영문을 몰라서 눈이 휘둥그레졌다. 김현주 선생님과 따님인 재은씨가 크게 웃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런데 자세히 보니 눈에는 눈물이 그렁그렁한 것이었다. 김현주 선생님은 교수님의 이야기를 듣고 눈물을 흘리고 있었는데 옆에서 더 크게 울고 있는 딸을 보고 그만 웃음이 터졌다고 한다.

두 사람의 웃픈 사연을 듣고 우리도 크게 웃었다. 그리고 중3인 재민이가 수술을 하고 병원 생활을 하면서 성숙해졌던 경험을 이야기 했고 ‘잃어버리기 전에는 자신이 가진 것이 무엇인지 모른다’는 말을 했을 때 정말 대견하게 느껴졌다. 내가 30대에 깨달은 것을 재민이는 10대에 알고 있다니 너무 기특했다.

마지막에는 STAR프로그램 이수증을 수여하는 시간이 있었다. 모두에게 이수증을 한 장씩 나누어주고 서로가 서로에게 이수증을 수여하도록 하였다. 나에게는 전재은씨가 와서 이수증을 전해 주었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그때는 말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재은씨가 아파 봐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아파본 사람이 다른 사람의 아픔에 더 크게 공감하는 것 같다. 무엇인지는 모르지만 재은씨에게도 큰 아픔의 시간이 있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2017년 광주 회복적 생활 연수와 2018년 회복적 정의 해외 연수에서 나는 큰 선물을 받았다. 좋은 사람들과 안전한 공동체를 만났기 때문이다. 그리고 안전한 공동체 안에서 자신의 상처를 드러낼 때 우리가 서로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을 배웠다. 내 안에 상처가 아물고 무너졌던 내면이 회복되고 있는 것을 느끼며 너무나 감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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